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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화랑에 대해 조사하던 젊은이를 기억하나? 그 사람이 지금은 백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공부하고 있는 모양이라더군. 자네가 협력해줬으면 좋겠대. 백제라면, 신라가 멸망시킨 나라였지…. 자세한 얘기는 한양의 젊은이에게 들어 보게나.
| 이름 | 난이도 | 장소 | 발견물 | 스킬 |
|---|---|---|---|---|
| 조선 반도 서쪽 해안 | 무령왕릉 | 인식,고고학,검술 |
1. 한양 청년 - 젊은이의 노력 지난번에는 고마웠어. 그 이후로 신라뿐 아니라 백제와 고구려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싶어졌지 뭐야. 그 역사가 모여서 통일신라가 된 거니까. 이곳 남쪽에는 왕릉도 있고 하니, 일단은 백제의 왕에 대해 조사해볼까 하네. 자네도 도와주지 않겠어?
2-1. 한양 학자 - 백제의 최후 백제는 제26대 왕인 성왕 시대에 신라와 대립하고 있었지요. 성왕은 신라에 빼앗긴 영토를 탈환하려 침공했을 때 복병들의 기습에 의해 전사했다고 전해집니다.
2-2. 한양 학자 - 백제의 부흥 성왕 바로 전의 제25대 왕이, 당신이 발견한 왕릉의 주인인 무령왕입니다. 무령왕은 계속된 전투로 피폐했던 나라를 부흥시켰지요. 멋진 왕릉도 그 증거라 할 수 있겠지요.
2-3. 한양 학자 - 삼국의 관계 물론 무령왕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은 아닙니다. 제24대 동성왕의 노력도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요. 고구려, 백제, 신라 중 고구려와 신라는 영토 확장이나 삼국 통일과 같은 대외적 움직임을 보였지만, 백제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지요. 그러나….
2-4. 한양 학자 - 왕과 국가 피폐해진 나라를 풍요롭게 하고, 불교를 펼쳐 다른 나라에까지 전파한 백제의 문화…. 그리고 그것들을 통치한 백제 왕의 내정은 평가 받아 마땅한 것이지요. 내정은 백성의 협조가 있어야만 성립되는 것 입니다. 백성도 백제 왕을 존경해서 그렇게 훌륭한 왕릉을 만든 것으로 생각해요.
2-5. 한양 학자 - 대대로 전해지는 문양 백제 왕은 대대로 한 자루의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문양에는 백제 왕의 증표가 있었다고 하지요. 왕에 따라 지닌 검은 달랐지만, 그 문양만은 계속 이어졌다고 합니다. 왕릉이 있는 남쪽 육지… 그곳에서라면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결론 - 한 자루의 태도 백제의 왕에 대해 정보를 수집했다. 이곳으로부터 남쪽 육지에 있는 왕릉 주변에서 백제 왕에 관한 물건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확인하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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