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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텔이 투르와 푸아티에의 전투에서 패배했다면, 유럽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한 역사학자의 저서
「기사에게 등자란 꼭 필요한 것이다. 등자가 있기 때문에 말 위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일설에는 우마이야 왕조와 프랑크 왕국이 대립했던 투르와 푸아티네 전투 때 서유럽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 4 , 경험치30)
프랑크 왕국의 역사서
「궁재는 원래 왕가의 가정을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왕국이 분열을 거듭하고 왕가의 권한이 약해짐에 따라, 왕이 바뀔 때마다 영지와 병사를 관리하는 등의 공무를 집행하게 된 것이다.」 ( 8 , 경험치60)
우마이야 왕조와 프랑크 왕국의 전투에 관한 기록
「서고드 왕국을 멸망시킨 우마이야 왕조의 군대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 서부로 침공했다. 프랑크 왕국의 궁제 카를은 중장보병을 주력으로 하는 군을 이끌고 반격에 나섰다.」 ( 11 , 경험치80)
우마이야 왕조와 프랑크 왕국의 전투에 관한 기록
「푸아티에 근처의 평원에서 마주친 양쪽 군대는 한참을 서로 견제했다. 그리고 우마이야 왕조의 기병대가 프랑크 왕국군에게 돌격했으나, 밀집대형을 짜고 있던 프랑크군의 중장보병들은 이를 버텼다.」 ( 13 , 경험치90)
카롤링거 왕조의 역사서
「전투에서 이긴 프랑크군은 우마이야 왕조의 기병대가 사용하던 등자를 주목했다. 카를 마르텔은 이를 도입하여, 기병에게 땅과 농민을 주고 기사로 임명한 것이다.」 ( 14 , 경험치120)
카르 마르텔의 전기
「우마이야 왕조군에게 승리한 카를의 성망은 하늘을 찔렀고, 마르텔의 칭호와 전투용 망치를 하사받았다. 카를이 죽은 뒤 그 전투용 망치는 어떤 장소에 숨겨졌다. 카를 마르텔의 승리가 없었더라면, 이후의 레콘키스타도 없었을 것이다.」 ( 15 , 경험치130)
전기를 바탕으로 작성된, 카를 마르텔의 전투용 망치가 숨겨진 장소를 나타내는 지도
카를 마르텔의 전투용 망치는 지금도 그곳에 잠들어 있을까. ( 16 , 경험치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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