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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스탄불 부근의 해협을 조사한 적이 있었지? 그 보고에서 비잔틴 제국의 군과 터키군의 싸움에 관한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해서 어떤 전술가로부터 조사의뢰가 와 있네. 아테네의 해양조합 마스터라면 뭔가 알고 있을 것 같네.
1. 아테네 해양조합, 해양조합 마스터 - 조사 내용 자네가 의뢰를 맡은 항해자로군. 의뢰주인 전술가는 지금은 자리를 비우고 없네. 그 대신에 내가 이야기를 하겠네. 사실은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게 된 계기가 육지로 간 선박 때문이라는 정보가 들어왔네.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조사를 해 주게. 살로니카에 있는 여행하는 학자가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네.
2-1. 살로니카, 여행중인 학자 - 터키와 비잔틴 현재, 이스탄불이라고 불리고 있는 그 도시는 옛날에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었습니다. 수도는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압도적인 전력을 갖추고 있던 투르크군조차도 공격에 애를 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다를 달릴 배가 육지를 달려야 할 만큼 말입니다…
2-2. 살로니카, 여행중인 학자 - 지형의 관계 왜 배가 육지로 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요…. 그것은 콘스탄티노플이 동쪽으로 튀어나온 반도의 앞쪽에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북쪽은 금각만, 남쪽은 마르마라해가 지키고 있는 비잔틴 제국을 공격할 수 있는 곳은 육지인 남쪽의 성벽뿐이었습니다.
2-3. 살로니카, 여행중인 학자 - 해양전의 관계 어느 날, 비잔틴 제국으로 향하는 원조 물자를 실은 제노바선 4척을 투르크군이 잡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투르크군은 100척이나 되는 선박을 가지고도 그 4척을 잡지 못했습니다. 비잔틴 제국과 투르크군은 해양전의 경험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4. 살로니카, 여행중인 학자 - 성공한 육지통과 작전 하지만, 메메드 2세는 유럽방향의 보스포러스해협의 육지를 넘어, 선박을 금각만으로 직접 보내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작전은 성공했고, 서쪽의 성벽과 금각만에서의 대포 공격으로, 비잔틴 제국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입니다…
3-1. 이스탄불, 손님 - 터키군을 거절한 쇠사슬 왜 메메드 2세가 선박을 육지로 운반하지 않으면 안 되었냐고? 금각만 입구가 봉쇄되어 있었기 때문이지. 거대한 쇠사슬로 말이네. 그것만 없었더라면, 금각만에서 비잔틴 제국의 성벽으로 총공격을 할 수 있었을 텐데. 4척의 제노바 선박도 감쪽같이 그 쇠사슬 건너로 도망쳐버렸다네.
3-2. 이스탄불, 손님 - 터키군의 강습 그래서 투르크군의 선박은 육지를 넘어 금각만으로 갈 수밖에 없었네. 지면에 통나무를 설치하고 기름을 발라서 선박을 끌어올렸지. 비잔틴 제국측은 정말 놀랐을 거네. 어쨌든 하룻밤 사이에, 금각만에 생각지도 못했던 투르크군이 있었으니까 말이야.
3-3. 이스탄불, 손님 - 비잔틴 제국의 패배 그때부터 비잔틴 제국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쪽의 성벽과 금각만으로부터 포격을 받고 제 1진, 제 2진, 그리고 예니체리군의 연속된 공격에 견디지 못한 채, 그 혼란 속에서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전사한 모양이다.
3-4. 이스탄불, 손님 - 「만약, 그 때」 금각만의 쇠사슬은 비잔틴 제국의 급소였지.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만약에 메메드 2세가 함대를 육지로 보내는 작전을 세우지 않았다면, 아직도 비잔틴 제국의 수도는 콘스탄티노플이었을 거네. 그 쇠사슬은 이 도시의 모스크에 보관되어 있는 모양이네. 결론- 쇠사슬과 육지 넘기 선박을 육지로 이동시킨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다에 쇠사슬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선박으로 육지를 넘어야 했던 원인이 된 그 쇠사슬은 현재, 이 도시의 모스크에 보관되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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