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딩 중…
브르타뉴의 암사자로 통하며 프랑스 연안부를 어지럽히던 여해적 잔느. 그녀의 복수는 성공했을까.
백년전쟁 초기에 「브르타뉴의 암사자」라 불리던 귀부인 해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프랑스의 배, 도시, 마을을 가차없이 습격하여 북 프랑스 일대의 땅을 어지럽혔다고 한다. 프랑스 왕은 세수입에 막대한 타격을 입힌 그녀를 매우 증오했다고 전해진다. ( 5 )
귀부인의 이름은 잔 드 벨빌. 프랑스 굴지의 미녀라 칭송받던 그녀는 브르타뉴의 유명한 기사, 크리슨 남작과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매우 사이가 좋아 3남 2녀를 두었으나, 공위 계승을 둘러싼 다툼이 발발하면서 그녀의 행복한 생활도 끝이 나고 말았다. ( 7 )
브르타뉴 공의 후계자 다툼에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개입했다. 크리슨 남작은 프랑스 편이었지만, 한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포로가 됐다는 사실 때문에 내통을 의심받게 된다. 창 시합 때문에 파리를 방문 중이던 남작은 프랑스 왕의 명령으로 인해 갑작스레 사로잡혔다. ( 9 )
크리슨 남작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고, 잔 또한 구명을 탄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작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그 목은 낭트의 성문에 걸렸다. 사랑하는 남편을 억울하게 잃은 잔은 격하게 분노했고, 프랑스 왕에게 복수할 것을 맹세했다. ( 11 )
잔은 가진 재산을 처분하여 병사를 고용한 뒤 잉글랜드 진영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육지에서의 전투는 제약이 많아 원하는 때 원하는 장소에서 전투를 시작할 수 없다. 이에 잔은 3척의 쾌속선을 얻어, 선체는 검게 칠하고 돛은 붉게 물들여 바다로 나간다. ( 12 )
이것이 바로 브르타뉴의 암사자라 불리는 전설의 여해적이 탄생하게 된 계기다. 잔은 용맹한 두 아들을 이끌고 가장 먼저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고 한다. 극소수의 패잔병만을 살려보냈는데, 프랑스 왕에게 「잔 드 크리슨의 소행이다」라는 말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 13 )
프랑스 왕이 붕어한 뒤에도 잔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복수 대상은 프랑스 자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잔이 복수를 멈추고 바다를 떠난 것은 그로부터 16년이나 지난 뒤였다고 전해진다. ( 14 )
일찍이 「브르타뉴의 암사자」라 불리던 여해적, 잔 드 크리슨이 애용했다고 전해지는 검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 ( 15 )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하세요.
로그인하여 댓글 작성아직 댓글이 없어요.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