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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무용수에서 비잔틴 제국의 황후 자리까지 올라간 테오도라는 뛰어난 조언자로서 황제를 보좌하는 총명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한 역사학자가 집필한 서적
「로마 황제의 비는 늘 로마인이었다. 타국의 황녀와 결혼하면 제국의 방침에 영향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선제』 라 불리던 티투스조차도, 연인이었던 동맹국의 왕녀와 끝내 결혼하지 못한다고 한다.」 ( 4 , 경험치30)
한 학생의 연구 논문 중 일부
「비잔틴 제국의 황후들은 저마다 매우 다양한 배경을 지니고 있었다. 유력 귀족출신인 황후가 있었는가 하면, 타국의 왕녀 출신인 황후도 있었다. 이렇게 다채로운 출신지의 인물이 모이게 된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 6 , 경험치40)
그리스 역사가의 저서
「비잔틴 제국의 흥망과 황후의 출신에는 관계가 있었다. 국력이 확고해서 황제의 전제체제가 가능하던 시대에는 서민의 딸을 황후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 이척 (황후의 가문)이 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갖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 8 , 경험치60)
그리스 역사가의 저서
「시대가 지난 뒤에는 대귀족 출신, 더 나중에는 타국의 왕가 출신의 황후를 맞는 일이 늘어났다. 이는 황제의 전제체제의 붕괴와 제국 자체의 쇠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제 4회 십자군에 의한 점령이 그 흐름을 결정지었다고 볼 수 있다.」 ( 10 , 경험치70)
역사가 프로코피우스의 저서
「테오도라 황후의 출신 배경은 이색적이다. 그녀는 경마장을 겸한 원형투기장의 서커스단에서 곰 조련사로 태어나, 황태자 유스티니아누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가난한 무희였다고 한다.」 ( 11 , 경험치90)
역사가 프로코피우스의 저서
「가난한 무희 테오도라에게 첫 눈에 반한 황태자 유스티니아누스는 의원과 무희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던 법률을 개정하고, 테오도라와의 결혼이 가능해지도록 했다.」 ( 12 , 경험치100)
비잔틴 황녀의 저서
「테오도라의 가장 큰 공적은 콘스탄티노플에서 발발한 니카의 난 때 도망치려 한 유스티니아누스를 꾸짖어 난을 진압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가난한 여성들을 원조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 13 , 경험치130)
비잔틴 황녀의 저서
「니카의 난을 극복한 유스티니아누스는 비잔틴 제국의 판도를 최대로 확장하고 법률서의 편찬을 명하는 등, 뛰어난 황재가 되었다. 이후로도 테오도라는 유스티나아누스에게 좋은 상담자가 되어주었다고 전해진다.」 ( 14 , 경험치160)
역사가 포르코피우스가 개인적으로 남긴 기록 『비사』에 감춰져 있던 지도
프로코피우스에 의하면, 테오도라가 무희 시절에 애용했던 신발이 아나트리아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 15 , 경험치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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